작가 : Albrecht DÜRER (Nuremberg, 1471 - 1528) 듀러
작품 : Autoportrait ou Portrait de l’artiste tenant un chardon
시대 : 1493 (Renaissance allemande)
크기 : 56 cm x 44 cm
재료 : Parchemin marouflé sur toile
전시장소 : Aile Richelieu 2e étage Pays-Bas,
XVIe siècle Salle 809 루브르박물관
자화상 또는 엉겅퀴를 든 화가의 초상화
이 화가의 초상화는 듀러가 22살 때, 독일 지역을 한 바퀴 돌며 여행한 시기 말 즈음 완성한 작품이다. 서양미술에서 최초의 독립 자화상으로 간주한다. 화가가 들고 있는 엉겅퀴는 그의 약혼녀 Agnès Frey에게 보이는 부부간의 정조를 상징하는 증표일 수도 있고,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 수난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의 가시 면류관의 가시 )
서양 최초의 자화상 중 하나
그의 고향 도시 누렘버그에서 도제 교육을 마치고, 젊은 듀러는 독일 남부 지역을 한 바퀴 도는 여행을 떠난다.
이 자화상은 1493년에 완성했다. 그때 22살 이었고 어쩌면 스트라스부르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듀러는 자신의 모습을 참신한 주제로 선택했다. 이것은 서양미술에서 최초의 독립 자화상 중 하나로 여겨진다.
사실 중세 말기부터, 화가들은 그들의 작품 속에 본인의 얼굴을 그려 넣은 적이 있었다. 관객을 뚜렷이 쳐다보고 있는 방식이라 알아보기가 쉬웠다. 그러나 이 시대의 자화상은 주로 종교가 주제이고, 큰 화면 구도에서 화가의 얼굴은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사실주의, 세련된 초상화
어두운 배경, 4분의 3 자세, 반신상의 화면 구성은 그 당시 회화적 전통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자세가 약간 어설픈 이유는 화가가 계속 거울을 보며 작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세련된 옷을 입고 있다. 방울이 달린 조그마한 빨간색 모자, 푸르스름한 회색의 우아한 옷은 목이 깊게 패이고 수를 놓은 흰색 슈미즈와 대조된다. 얼굴은 어릴 적에 그린 자화상 (1484, Vienne, Graphische Sammlung Albertina)처럼 부분적으로 동안의 느낌을 주지만, 성년 남자의 목, 굵은 코, 그리고 길고 예리한 손 모양은 이미 성인의 특징을 담고 있다.
최고의 판화가이기도 한 듀러는 그래픽 방식으로 그의 작품을 표현하기도 했다. 엉겅퀴의 가시 부분은 거의 금속에 가까운 정밀성을 보여주는데 그의 초기 교육인 금속 세공을 떠올리게 한다.
약혼자에게 주는 선물? 아니면 예수를 암시?
괴테의 도상학적 해석에 따르면, 1494년 누렘버그로 돌아온 후에 결혼하려고 했던 듀러의 약혼자 Agnès Frey에게 주는 선물이라고 한다. 화가가 들고 있는 엉겅퀴는 사실 독일어로도 ‘mannstreu’, 즉 ‘남편의 정조’를 뜻한다. 사랑의 상징은 역시 의상의 우아함에서도 나타난다.
이 가설이 가지는 가장 큰 결점은 듀러는 그의 아버지가 설계한 정략결혼을 무시했다는 것이다. 엉겅퀴는 또한 예수 수난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더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의 가시 면류관의 가시), “저기에 쓰여진 것처럼 내게 일어나는 일들”이라고 그림 속 날짜 옆에 새겨진 글자로 연관 지은 것이다.
이 작품은 1500년에 완성할 자화상 (Munich, Alte Pinakothek)을 예고하는데, 듀러는 여기서 세상을 구원하는 자로서 신의 영광이 있는 광배를 두른 예수의 형상으로 묘사되었다. 어느 것이 되었든, 이 자화상은 화가로서 자존심과 인간적인 겸손함이 함께 배어 있어 앞으로 예술가들이 추구하게 될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드러낸다. 듀러는 중세적 전통 끝에 새로운 미술을 제시하면서 독일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로 자리매김한다.
글 : 한미숙 / mms7han@yahoo.com
런던대학교 큐레이터 석사 전공, 소르본 동, 서양미술사
현재 ‘파리 쉽게 배우는 서양미술사’ 7년 강의 중
※ 파리 루브르 미술관이 자랑하는 최고 걸작 34점을 연재로 소개합니다. 본 내용은 루브르박물관 자료를 발췌하여 번역한 것입니다.